정보생산자 드문 한국의 인터넷 공간

인터넷 여기저기를 서핑하다보면 국내 홈페이지들이 유난히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초기화면이 열리는 순간부터 큼직한 이미지와 번쩍거리는 배너광고가 방문자의 눈길을 어지럽히는 것은 상업적인 사이트는 물론이요 개인 홈페이지에서조차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일이다. 요즘은 현란한 플래시 애니매이션과 다양한 동영상까지 심심찮게 동원되면서 홈페이지의 눈요깃감은 날로 다채로워지고 있는 추세이다.

이는 빽빽하게 들어찬 텍스트 중심으로 꾸며져 있고, 그조차도 스크롤바를 계속 내리면서 읽어나가야 하는 서구의 홈페이지들과는 확실히 구별되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아직 ADSL이 널리 보급되지 않아 여전히 전화선을 이용한 모뎀 접속을 하는 외국에 나가서 한국의 홈페이지를 접속하려면 너무 느려서 답답하다는 이야기도 들려 온다. 격식과 외양을 중시하는 한국의 전통적 사고방식과 서구의 실용주의적 사고방식이 인터넷 공간에도 그대로 대비되어 나타나고 있는 모양이다.

물론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옛말처럼 미려하게 가꾸어진 홈페이지를 굳이 탓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막상 “보기 좋은 떡에 먹을건 별로 없다”는 것이다. 화려한 외양과 달리 정작 내실있는 정보가 담긴 홈페이지를 만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컨텐츠는 넘쳐 나지만 막상 꼭 필요한 정보를 찾아내는 것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인터넷을 두고 음란의 바다요 쓰레기의 바다라는 식으로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목소리에는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인터넷상의 정보가 애초의 기대만큼 충실하지 못하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신문이나 방송처럼 정보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엄격하게 나뉘어져 있는 일방향 미디어와 달리 인터넷은 누구나 정보의 생산자가 될 수 있는 쌍방향 미디어라고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생산소비자 즉 프로슈머(Producer + Consumer)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의 네티즌들은 여전히 정보의 소비자로서만 머무르도록 길들여지고 있다.

연일 신문 지면을 장식하는 인터넷 관련 기사들은 한결같이 독자들에게 현명한 인터넷 소비자가 되기 위한 필요한 노하우만을 다룰 뿐 생산자로서 갖추어야 할 정보는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인터넷 관련 교육 역시 소프트웨어를 잘 다루고 정보 검색을 잘 하는 유능한 정보 소비자의 양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 뿐 유용한 정보 생산자의 양성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여기에 더하여 상업화로 급격히 치달아버린 인터넷 공간의 냉혹한 시장 논리는 공유 정신에 입각한 풀뿌리 정보 생산자들이 설 땅마저 빼앗아 버렸다.

이렇듯 지금 우리의 인터넷 공간에는 생산소비자들에 의해 공유되는 정보가 아닌 소비자들에게 판매되기 위한 정보만이 흘러 넘친다. 그리고 소비자본주의 시대의 상품들이 품질보다는 디자인과 포장으로 승부에 주력하고 있듯이, 인터넷 공간의 정보 상품들 역시 정보의 내용이나 질보다는 홈페이지의 화려한 외양과 장식으로 끊임없이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정보격차에 관한 논의는 주로 정보 접근이나 정보 활용과정에서의 불평등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보 생산과정에서의 불평등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인터넷의 미덕이라 할 수 있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과 정보의 공유는 프로슈머들의 왕성한 정보 생산이 뒷받침되어야만 제대로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대한매일 2002.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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